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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을 그리워하는 어린 제자의 추억이야기 - <창가의 토토>

by BANSOOK 2020. 3. 28.

 

저자: 구로야나기 테츠코

출판사: 프로메테우스출판사

출간일: 2004년 1월

별점: ★★☆


소설은 감상을 쓰기가 어렵습니다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결말과 중요한 부분의 내용을 언급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이 그 작품을 읽게 될 기회를 빼앗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설책은 웬만하면 리뷰를 잘 쓰고 싶지 않은 장르이지만 <창가의 토토>는 한 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저자의 자전적인  소설이면서 옴니버스 구성이고 중요한 반전도 없고 결말이 알려져도 상관없는 내용이기 그나마 좀 나을 것 같다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런 좋은 책은 많이 소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이제는 거의 고전의 반열에 들만큼 오래되었고 유명한 소설이지만 이제야 이 책을 읽으며 '아, 나는 왜 이 책을 이제서야 읽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 본 만큼 예전에 읽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것을 지금은 알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좀 더 빨리 읽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더 컸습니다.

비록 이 책의 매력의 반의 반도 표현하지 못하겠지만 조심스럽게 <창가의 토토>에 대한 내용을 적어 보겠습니다.

 

<창가의 토토>는 저자 구로나야기 테츠코의 자전적 소설로 주인공 토토는 저자의 어린 시절 별명이고 모든 에피소드는 실화입니다. 저자의 어린 시절인 만큼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던 1940~5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다면 감상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퇴학

여기 초등학교 1학년에 퇴학을 당한 토토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는 주의가 산만하여 창가에 멀뚱멀뚱 서서 지나가는 사람을 부르거나 수업시간에도 수십 번 책상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수업에 방해가 되는 짓만 골라합니다. 결국 참다못한 학교는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퇴학을 시키게 됩니다. 결국 참다못한 학교는 토토를 퇴학시키게 되고 토토의 엄마는 토토의 손을 잡고 새로운 학교를 찾아 나섭니다.

하지만 엄마는 토토에게 학교를 퇴학당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콤플렉스를 만들어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토토는 새로운 학교 '도모에 학원'으로 첫 등교를 하게 됩니다

 

도모에 학원

도모에 학원은 특이한 학교였습니다. 교문은 나무로 되어 있고 교실은 전철의 교량으로 되어있고 전교생은 5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토토는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이 학교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더욱 신기한 건 교장선생님이었습니다.

등교 첫날 토토는 교장선생님을 만납니다. 교장선생님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해보라고 했고 토토는 신나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들어주겠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나게 이야기하고 나서 보니 4시간이나 흐른 상태였습니다. 교장선생님은 토토의 이야기를 아무 말 없이 4시간이나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토토는 이 학교와 교장선생님이 너무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교실에 정해진 자리도 없고 수업 과목 역시 어떤 것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의 편식을 막기 위해 '산과 들과 바다에서 나는 것'을 도시락으로 싸오는 것이 규칙이었고 식사 전에는 항상 합창을 하며 노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원할 때는 언제라도 다 함께 산책을 나가기도 했습니다. 

토토는 이런 학교가 너무 좋았고 하루하루가 새로움과 놀라움의 연속이어서 빨리 내일이 돼서 학교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알몸으로 수영하기

어느 무더운 여름날, 도모에 학원은 수영을 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수영장에 간 토토는 깜짝 놀라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아이들이 모두 벌거벗고 수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토토 역시 좋아라 하며 알몸으로 수영장에 뛰어들어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물놀이를 합니다. 알몸으로 수영하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 줄 처음 알았습니다.

물론 벌거벗고 수영을 하는 것은 강제된 규칙이 아니었습니다. 수영복이 있으면 입어도 상관없었습니다. 하지만 수영복을 입는 아이들은 없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어떤 몸이든 저마다 아름다운 것'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도모에 학원의 아이들은 언제나 온 몬이 새까맣게 타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처럼 수영복 자국만 하얗게 남는 일은 없었습니다.

 

 

색시가 될 수 없어

토토는 같은 반 타이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좋아하냐면 타이의 필통 속에 있는 연필을 전부 칼로 가지런히 깎아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타이가 와서는 화난 모습으로 "난 네가 아무리 애원해도 절대 내 색시를 삼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토토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토토는 타이가 그러는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같은 반 친구와 의논을 했는데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연하지. 토토 너, 오늘 씨름하면서 타이를 냅다 던져버렸잖아"

토토는 그때 기억이 났습니다. 연필을 매일 깎아줄 정도로 좋아했으면서도 씨름 시간에는 까맣게 잊고 던져버린 것이었습니다. 토토는 타이의 색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슬프지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할 수 없지, 뭐... 그래도 연필 깎아주는 건 계속해야지! 좋아하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

 

누더기 학교

도모에 학원에는 '추방의 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마지막 종소리가 울리기 전까지는 마음껏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아이들은 '추방의 종' 소리가 울릴 때까지 자유롭게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학교 밖에서 이상한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도모에 학교 누더기 학교! 들어가 봐도 누더기 학교!" 

주변 학교 아이들이 도모에 학교를 놀리려는 마음으로 계속 노래를 불러대는 것이었습니다. 도모에 학원을 너무 사랑하는 토토는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토토와 반 친구들도 노래를 불렀습니다.

"도모에 학원 좋은 학교! 들어가 봐도 좋은 학교!"

토토와 친구들의 노랫소리는 학교에 울려 퍼지고 더 많은 아이들이 모여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도모에 학원 좋은 학교! 들어가 봐도 좋은 학교!"

물론 아이들은 교장선생님이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이 광경을 보고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그 날은 여느 때보다 '추방의 종'이 늦게 울렸습니다.

 

약속 

토토는 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고민이었습니다. 발레리나도 되고 싶고 간호사도 되고 싶고 되고 싶은 게 너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 고민 고민해서 스파이가 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토토는 우쭐하며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나 스파이가 되기로 했어!!"

그러자 친구는 토토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토토가 알아듣기 쉽게 천천히 말합니다.

"스파이가 되려면 머리가 좋아야 돼. 게다가 여러 나라 말도 할 줄 알아야 되고... 그리고 무엇보다 여자 스파이는 얼굴이 예쁘지 않으면 될 수가 없어"

토토는 깜짝 놀랐습니다. 친구가 스파이가 되는 걸 반대해서가 아니라 친구의 말이 모두 옳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역시 친구랑 의논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뭐가 되면 좋을까' 하고 고민하던 토토는 지나가는 교장선생님을 보고 뭔가를 떠올립니다. 그리고는 교장선생님에게 달려가 말합니다. 

"저, 크면 이 학교의 선생님이 되겠어요! 꼭이요!"

토토의 말은 들은 교장선생님은 웃음이 아닌 진지한 표정으로 토토를 바라보았습니다.

"약속할 수 있지?"

토토는 교장선생님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하였습니다. 교장선생님은 무척 기뻤습니다.

폭탄을 실은 비행기가 언제 상공에 나타날지는 몰라도 말입니다.

 


책에서 기억에 많이 남았던 에피소드를 한번 주욱 적어봤는데 적는 동안에도 읽었을 때의 감정이 좀 올라왔네요.

결국 전쟁은 일어났고 도모에 학원은 불타버리는 엔딩을 맞이하지만 교장선생님의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그 가르침을 전해받은 제자들은 도모에 학원을 언제까지나 기억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디에서 들었는지 모를 문구 하나가 계속 떠올랐습니다.

스승은 그 사람의 영혼에까지 스며들기에 그 영향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책에서는 교장선생님의 행동과 수업방식에 대한 의도의 설명이 나옵니다. '그 어린 토토가 교장선생님의 의도를 알 리가 없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는데 작가 후기에서 보니 토토가 다 크고 나서 돌아봤을 때 '그때 교장선생님은 이런 마음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으로 썼다고 합니다. 교장선생님의 가르침은 제자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된 것 같습니다. 

 

토토는 좋아하는 게 너무 많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섀퍼드, 로키도 좋아하고 농부아저씨도 좋아하고 소아마비 친구도 좋아하고 전철역의 역무원아저씨도 좋아하고 나무에 오르는 것도 좋아합니다.

문득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게 많습니다. 좋아하는게 너무 많아서 고민이 될 정도로 많은 것들을 좋아합니다.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게 많아진 것 같습니다. 하려고 하는 것보다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아이 때는 뭐든 좋았고 쉽게 좋아했지만 왜 이렇게 싫어하는 게 많아졌을까요? 

 

너무나도 훌륭하고 사랑했던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한 어린 제자의 추억어린 이야기, <창가의 토토>였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언제나 토토에게 "넌 정말 착한 아이란다"라고 이야기해주었다. 토토는 그 말이 좋았다.
아마 교장선생님은 진심으로 토토를 그렇게 생각했기에 그렇게 말해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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