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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나답게> - 나다운 것이란 무엇일까

by BANSOOK 2021. 5. 28.

저자: 한수희

출판사: 인디고

출간일: 2016년 7월 

별점: ★★★☆☆

난이도: ★☆☆☆☆


한때 '힐링'이라는 코드가 붐이 일던 적이 있었다. 세상에는 뭐가 그리 상처받은 사람이 많은지 '힐링에세이' 장르의 책들이 서점가를 휩쓸던 적이 있었고, 그 여파는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 같다.

아니, 뭐 이런 책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고...

에세이는 독서를 시작하기 가장 좋은 장르다. 어렵지 않게 써져 있고 읽다보면 공감과 위로가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쓰기도 쉽고, 읽기도 쉬운 장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점 때문에 너무 낮은 수준의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다. 베스트셀러에 올라와있던 수많은 에세이들을 읽어보았지만 개인SNS에나 올라올법한 저급한 글들을 묶어 놓은 것이 책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런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사실이 개탄스럽기도 했다. 

물론 취향은 항상 주관적이기에 누군가에는 의미있고 좋은 책일수도 있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으로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너무 열심히 하지마", "너는 소중해" 같이 너무 쉬운 말들로만 나열되있는 건 좀 너무하잖아. 

 

하지만 그 와중에도 좋은 에세이를 몇권 발견하기도 했는데 책을 읽기 초창기에 읽었던 <온전히 나답게>가 바로 그러한 에세이 중의 한 권이었다. 

 

작가는 칼럼니스트로서 글을 쓰면서 아이들을 키우는 주부이기도 하다. 책은 작가님이 겪어온 일상에서 느꼈던 생각과 감상을 (서문에 쓰여진대로 최대한 힘을 빼고 가볍게) 담백한 문장으로 쓰여져 있다. 특별한 기교없이 쓰여져있던 그 문장들이 어째서인지 그 당시의 나에게 참으로 와닿아서 이번에 다시 읽어보았는데도 참 좋았다.

 

에세이라는 것이 단편적인 에피소드들의 모음이라 내용을 주욱 열거하기는 어려우니 좋았던 문장을 위주로 소개해보겠다.


냉철한 현실감각을 갖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에 환상의 색채를 더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가장 좋았던 문장이었다. 이 당시의 나는 현실적인 문제를 회피하고 싶어서 꿈이나 이상만을 쫓고 있었다. 그 때 이 문장은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의미없는 짓만은 아닌 것이라는 위로와 함께, 지금은 먹고 살만해지며 감정이 메말라지는 삶을 살고 있을 때 정서적인 부분을 환기시켜주기도 했다. 결국 현실과 환상 둘 다 중요했다. 

 

 

아무리 새로운 물건도 빛이 바랜다.
어딘가에 돈을 쓰고도 아깝지 않으려면 경험에 쓰는 것이 가장 낫다.
그래서 여행을 가는 것은 돈을 잘 쓰는 방법 중의 하나다. 

물건을 살 때마다 그랬다. 물건을 산 즐거움이 과연 일주일은 갔던가.

이 글을 보고 뭔가를 배우는 것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혼자서 여행을 떠나보았다.

그 두가지는 모두 지금 나에게 좋은 경험과 추억으로 남아있어 커다란 재산이 되었다.

 

 

누군가가 그랬다. '완벽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고.
적당히 느슨하게, 적당히 지저분하게, 적당히 게으르게, 적당히 헤매게, 적당히 비겁하게.
뭐든 우리의 행복에 방해가 되지 않는 정도로만.

완벽한 것은 존재하지 않건만 우리는 모두 완벽하려고 애쓴다. 다른 건 그렇게 완벽하게 하지도 않으면서 어딘가에 하나 꽂히면 사소한 문제도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가짜완벽주의자'가 된다. 

너무 설렁설렁 사는 것도 문제겠지만 너무 완벽하려는 것 역시 문제다

적당한 것이 가장 좋다.

 

 

헬스는 한 달만에 관뒀다. 헬스장의 러닝머신에서 올라서서 나는 깨달았다. 
아, 나는 기계 위에서 걷거나 뛸 수 있는 사람이 아니구나.
왜 걷거나 뛰면서 텔레비전을 보아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무조건 방바닥이나 소파 위에 널브러져서 봐야 하는 것이다.
걷거나 달리는 것은 무조건 바깥에서 해야 한다.
천장이 없는 곳에서, 하늘이 보이는 곳에서, 신선한 바깥 공기를 한껏 들이쉬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얼 좋아하는지, 무엇이 내가 맞는지를 아는 것이 나답게 사는 비결 중 하나일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가지지 않은 것을 증오하거나 혐오하는 방법을 모른다. 
다시 말해, 내가 무언가를 싫어한다면 그건 그것이 나에게도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가끔 어떤 종류의 사람을 싫어하게 된다. 왜 싫은지 이유는 모르지만 어쨌든 싫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그 사람이 나와 닮아서 싫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조차 싫어하는 나의 단점을 그 사람에게서 보는 것이 괴로웠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남들에게잘 보이고 싶고, 날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괴로워할 때도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필사저긴 기분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남편도 있고, 애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주기 때문이다.

혼자일 때는 몰랐다. 하지만 이제 내 옆에 누군가가 생기고 나서야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한 힘이 되어주는지를 알게 됐다. 여전히 타인의 시선에,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겠지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기둥이 되고 나침반이 되어서 얼마든지 버틸 수 있고,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나는 내 아이들이 좀 더 좋은 세상에서 자랐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만 잘 살아서 될 일이 아니다. 나도 잘 살고 너도 잘 살아야 한다. 우리 동네 사람이 실직해서 우울증에 걸리거나, 술독에 빠지거나, 애들을 학대하면 우리 동네가 불행해진다. 

굉장히 좋았던 문장이다. 내가 잘 살기 위해서는 나뿐만 아니라 나의 주변사람과 세상 모두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이 모든 것들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나서야 세상을 조금 더 관심있게 지켜보게 되었다. 

 

사실 평생을 싸워온 자신의 단점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평생을 거쳐 부단히 노력해 이룰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과 화해하는 일이 아닐까. 

모든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결국 자신으로부터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어떤 원인으로 어떤 과정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건 간에 그 이야기에 매듭은 자기자신이 지을수 밖에 없다.

너에게 상처준 사람들을 용서하고, 너의 부모를 용서하고 마지막으로 너 자신을 용서하기 바란다.

용서할 대상이 없어진 그 다음에야 우리는 진정 자유로와질수 있다.

 

사랑은 원래 그 모습이 계속해서 변해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매 순간 둘 사이에 물음이 있고, 서로 그 물음에 대해 반응할 의지가 있는가 하는 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기를 원한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우리는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에게 끌린다고 한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건, 다른 사람을 만나건 중요하지는 않다. 

단지, 서로가 서로의 관계를 개선해나가려는 의지가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서로가 질문하고, 그 질문에 서로 답해나가며 변해가는 관계에 대응해가는 것까지가 사랑일 것이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운명론자가 돼.
왜냐하면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그리고 막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거든.
그럴 때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받아들여야지. 결혼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모두 결점을 지닌 인간들이기에 조금이라도 겸손해지려고 애쓰면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어

온전히 나답게 살기 위해서

온전히 타인이 타인다움도 받아들여야 한다.

나다운 삶을 살아야 하는건 나뿐만이 아니다.


드라마나 만화에서 흔히 볼 수있는 장면이다. 

 

"너답지 않게 왜 이래?"
"나다운게 뭔데?"

 

'나답다' 라는 건 대체 무엇일까? 하지만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주변사람은 나다운 모습을 잘 아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나다움이란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만 꾸며낸 나의 모습인 것이 아닐까.

책에서도 '나답다'라는 것에 대해서 명확히 다루지는 않는다. 하지만 작가님의 모습을 보면 내가 이 사람을 잘 몰라도 충분히 '저사람답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나답다는 것은 그동안 살아온 나의 모습 그 자체가 아닐까. 

그리고 그 모습이 마음에 들건, 부족하건 내 스스로가 그 모습을 나답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그 순간 나다움이라는 것이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도 나다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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